"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건 결국 삶의 맛입니다. 그래야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시작합니다. '이걸 왜 계산해요?' '이게 뭐예요?' 그렇게 교육에 다가가는 거예요."
말한 사람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EdTech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Kristina라는 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표현이죠. "삶의 맛."
PBL을 한 과목 너머로 넓혀보고 싶을 때
13년째 선생님들 만나는 일을 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PBL을 진심으로 사랑하세요. 학생들이 한 단원에 진짜로 몰입하는 순간을 본 분이라면, 그 맛을 다시 보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깁니다. 환경을 사회만으로 끝내기 아쉽고, 과학과 묶어 보고 싶고, 미술까지 엮으면 학생들이 진짜 살아 있는 표정을 짓겠다 싶고요.
다만 시간이 늘 부족하죠. 한 차시 자료 만드는 데 두 시간, 다른 교과 선생님과 협의하는 데 또 시간. PBL을 더 자주, 더 깊게 펼쳐보고 싶은 마음은 다들 비슷한데, 그 마음을 받쳐줄 시간이 빠듯한 거예요.
ChatGPT만으로는 한 발자국 부족했다
이 마음 때문에 다들 챗GPT를 켭니다. 저도 그랬어요. 근데 써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프롬프트 다듬는 데 한 시간, 결과물을 받아서 다시 잘라 활동지로 옮기는 데 또 한 시간. 시간을 줄이려다 시간을 다시 쓰는 일이 종종 생기죠.
특히 PBL을 만들 때는요. 한 과목 안에서 끝나는 자료는 그럭저럭 나오는데, 두세 과목이 자연스럽게 엮인 프로젝트는 프롬프트가 길어지고 결과물도 깔끔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EditAI(에딧에이아이)라는 도구를 한번 써봤습니다.
어떤 도구냐면
리투아니아에서 만든 K-12 선생님용 플랫폼입니다. 2023년에 두 사람이 시작했어요.
•
Kęstutis Jovaišas — 발트 3국 교육 컨설팅 15년 경력
•
Kristina Jonkuvienė — AI 전문가
챗GPT 열풍이 불기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게 좀 특이합니다. "AI가 유행이라서"가 아니라 "선생님 행정 부담을 어떻게 줄일까"에서 출발한 회사예요.
지금 9개국에서 1만 명 넘는 선생님이 쓰고, Bett Awards 2025 파이널리스트, World Summit Award 2025 교육 부문 수상까지 했습니다. 외국에서는 어느 정도 검증된 도구인데, 한국에는 이제 막 들어오는 단계입니다.
핵심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챗봇이 텍스트를 뱉어주는 게 아니라, 교실에서 바로 쓸 수 있는 프로젝트 한 세트를 만들어줍니다.
수업 계획, 활동지, 평가, 차별화 자료까지 하나로요.
영어 + 사회 프로젝트를 만들어봤습니다
며칠 전 한 번 돌려봤어요. 영어랑 사회를 묶은 PBL 프로젝트를 하나.
학년 누르고, 과목 두 개 체크하고, 주제 입력하고. 끝. 프롬프트 안 씁니다. 평소에 챗GPT에 "4학년 사회 환경 단원, 모둠 활동 포함, 활동지 4종, 형성평가 포함…" 이렇게 길게 쓰던 사람한테는 클릭 몇 번으로 끝나는 게 어색할 정도였어요.
결과물이 깔끔합니다. 솔직히 처음 보고 좀 놀랐어요. 한 과목 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두 과목이 자연스럽게 엮인 형태로 나옵니다.
물론 그대로 쓰진 않습니다. 저도 받은 결과물을 우리 교과서 단원 흐름에 맞게 좀 손봤어요. 다만 0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만큼 큰 차이를 만듭니다. 두 시간 들일 일이 십오 분이면 끝나거든요.
만든 사람들의 PBL 철학
이 도구는 그냥 자료 생성기가 아니라, PBL을 진지하게 생각해서 만든 도구입니다. Kristina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거의 그대로 옮겨봅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실제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요. 다양한 주제를 배우지만,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따로 배우지 못합니다. PBL은 짧은 프로젝트든 긴 프로젝트든, 학생에게 삶의 맛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러면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시작합니다. '이걸 왜 계산해요?' '이게 뭐예요?' 그렇게 교육에 다가가는 겁니다."
이 말이 꽤 와닿았습니다. 우리가 PBL을 "수업 트렌드"로 받아들이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이걸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장치로 보고 있었던 거죠. 도구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 시선 자체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다고 느낀 점
1. 17개 지역 교육과정에 자동 정렬됩니다. 한국 교육과정도 포함돼 있어서, 결과물이 우리 단원 체계에 어느 정도 맞춰 나옵니다.
2. 특수교육 대상 학생용 자료가 함께 나옵니다. 난독증, ADHD, 자폐 스펙트럼 학생용 차별화 과제. 통합학급 담임이라면 이 기능 하나로 시간이 꽤 줄어듭니다.
3. 16개 언어 워크시트가 동시에 생성됩니다. 다문화 학생 비율 높은 학교라면 이건 진짜 큽니다. 같은 활동을 한국어, 베트남어, 러시아어로 동시에 뽑아낼 수 있어요.
4. 학생 데이터를 받지 않습니다. EU 기반이라 GDPR을 준수하고, 학생 개인정보를 일절 수집·저장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주제만 입력하는 구조라 학교 도입 심의(제29조의2) 받을 때 부담이 줄어듭니다.
5. 멀티미디어 리소스가 한 번에 통합됩니다. 영상 링크, 개념 설명, 교사 지침서까지 같이 나옵니다. 따로 검색해서 짜깁기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솔직한 단점도 적어둡니다
1. 결과물을 그대로는 못 씁니다. 한국 교과서 흐름과 100% 맞지는 않아요. 손봐야 합니다. 다만 그 손보는 시간이 확연히 짧아진다는 거죠.
2. PBL을 처음 시도해보는 분에겐 입구가 약간 높습니다. 도구 자체는 클릭 몇 번이면 결과물이 나오는데, 그 결과물을 교실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결국 선생님 몫입니다. PBL 경험이 거의 없으면 "그래서 이걸 어떻게 풀지?"에서 잠깐 멈칫하실 수 있어요.
3. 한국에서는 사례가 이제 막 쌓이는 단계입니다. 저도 만든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했지만,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한국 교실에서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사례는 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단계예요.
다시, 삶의 맛 이야기
처음으로 돌아가서.
Kristina가 말한 "삶의 맛"이라는 표현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가 PBL을 "수업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이걸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장치로 보고 있었던 거죠. 그 시선이 도구에 그대로 담겨 있더라고요.
도구 하나가 교육 철학을 바꾸진 않습니다. 다만 준비 시간이 두 시간에서 십오 분으로 줄어든다면, 그 남은 한 시간 사십오 분을 다른 데 쓸 수 있겠죠. 학생을 한 명 더 들여다보거나, 수업 끝에 "오늘 어땠어?"라고 한 번 더 물어보거나.
그게 시작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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